"어이! 커피좀 뽑아와!"


"여기있던 고데기 어디갔아요?!"


"야 니들 빨랑 인순이 선배님한테 인사하러 안가?!"



공연준비로 시끌벅적한 대기실. 말쑥한 차림을 한 남자가 주변을 기웃거린다.

어수룩한 그의 모습은 한눈에 봐도 관계자는 아니었다.




"당신 뭐요?"


관계자로 보이는듯한 남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 저..저는 쿠기뉴스 기자인데, 제..제시카씨와 인터뷰 좀 할 수.."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오쇼!"


기자는 관계자의 등쌀에 떠밀려 밖으로 나왔다.






"아... 명카드라이브 마지막 공연에 제시카 인터뷰면 핫이슈감인데..."




최근까지 듀엣결성 계획이 잡혀있던 명카드라이브가 오늘로써 마지막 공연을 한다는 갑작스런 발표에 공연장에는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그 배경에 혹시 둘이 레스토랑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는 소문과 관련이 있는건 아닐지, 많은 기자들이 냄새를 맡은것이다.






"후.. 기왕 이렇게 된거 공연이나 볼까?"





공연장 안. 


아직 아무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여기저기 "냉면"과 "명카드라이브"라는 플랜카드를 든 팬들이 크게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잠시후 무대의 조명이 켜졌고 익숙한 전자음과 함께 명카드라이브가 등장했다.


공연이 시작됐다.


관객들은 아까의 환호성은 장난이었다고 말하는것처럼 엄청난 호응을 내줬고,


명카드라이브도 지금까지와는 상반되는 척척 들어맞는 호흡으로 관객에게 화답했다.



특히 제시카에게선 전과는 무언가 다른 여유로움이 보이고 있었다.




환상적인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은 열화와 같은 함성과 함께 박수 갈채를 보내줬다.


넋을 놓고 보고 있던 조기자도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이...이제는 진짜 끝인가..?"



아이돌을 좋아할 나이는 아니지만 마음한켠 어딘가 아쉬움이 느껴졌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서둘러 공연장을 빠져나와 사진을 찍기위해 주변을 배회하던 그는 무엇인가 목격했다.





"제..시카?"


그의 눈에 공연이 끝나고 다른 스케쥴에 쫓겨 급한듯 비상계단으로 내려오고 있는 제시카의 모습이 보였다.







"저.. 저기! 제시카양!! 인터뷰 좀...!!!"



제시카는 가던 길을 멈춰서고 그가 있는 쪽을 쳐다 봤다.





"며..명카 드라이브가 오늘로써 활동을 중단한다는게 사실인가요?"




"...네"


제시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왜.. 왜 이렇게 활동을 일찍 접는 거죠?"




"......"




"저기... 활동 중단이 두분이 함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다는 소문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일단 함께 레스토랑에 갔다는건 사실인가요?"






"... 아주 잠깐의 유행같은 거니까요..."




"네?"







제시카는 서둘러 자리를 떴고, 기자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유행???" 


그는 곰곰히 생각해봤다.







"냉면이 너무 떠서 말도 안되는 루머가 떠돌고 있다는 말인가..?"





"....."







그러곤 혼자 작게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애휴, 하긴 나이 차이가 그렇게 나는데 뭔일이 있었을라고.. 별일 아닌가 보네..."






순간,



그는 왠지 아까 제시카의 얼굴에서 미소를 본것 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곧 잊어버렸다.


아주 잠깐 동안의 유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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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미 2009. 8. 14. 02:59

"그것때문에 저를 레스토랑으로 부르신건가요?"


그는 대답이 없었다.


"오빠한테 저는 그런 존재인가요?"




"만나자.."


"네?"


"지금 만나자. 저번에 그 장소로 나와"


"뚜..뚜...뚜..."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를 끊으니 옆에서 티파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시카야, 너 설마.."



제시카는 재빨리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녀의 빠른 발걸음. 그리고 굳게 다문 입술이 무엇인가 다짐을 했음을 보여주는듯 했다.








약속한 장소.



그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도착한 제시카도 벤치에 앉았다.


둘은 벤치의 양쪽 끝에 앉아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미안하다"


"..."



"너를 돈때문에 이용하려는 생각은 없었어. 네가 내 딸같고 친구 같아서... 더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던ㄱ..."


순간 그는 그의 왼팔에 스치는 부드러운 살결과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그녀는 어느새 그의 옆에 와 있었다.







"저, 오빠 좋아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녀의 향기로운 샴푸냄새와 따뜻한 온기가 그의 몸을 휘감아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게


'단지 지금 이대로...'

 
'지금 이대로 계속 있고 싶다...'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






"냉면이 말이야..."


"네?"


"냉면의 인기가 언제까지 갈거라고 생각해?"



오랜 침묵을 깨고 그가 한 말에 제시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생각하기엔 딱 한달. 아니 한달도 못갈거야.."


그는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원래 유행이라는게 그런거거든. 잠깐 열광했었다가 얼마 못가 금세 질려서 바로 잊어버리지."



"그렇다고 그것이 의미없는 일은 절대 아니야.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보면 아른아른한 추억으로 남게되지."



"내가 저런것을 좋아했었구나. 나중에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되는것들도 참 많아.."


제시카는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너한테 지독하게 촌스러웠던 아주 잠깐 동안의 유행이었던거야.."








그는 벤치를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그냥 그걸로 만족할게.."



"...."






"밤이 되니까 날씨가 많이 춥다! 빨리 들어가라.."


그가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가 조용한 밤거리에 울려퍼진다.








소녀는 벤치에 혼자 남아, 조용히 아주 조용히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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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미 2009. 8. 14. 02:54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태호야, 오늘 뭐한다고?"


"아니, 이 형은 왜 계속 물어봐? 오늘 듀엣 가요제한다고!"



듀엣가요제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때부터 내 생각은 하나였다.

요즘 인기있는 아이돌과 엮어서 한번 대박 내보자는 생각.



제시카를 처음 찾아가 부탁했을때 혼쾌히 승낙해줄것이라 생각했는데, 뜸을 들이는것을 보고 약간 기분이 상했다.

요즘 젊은애들 싸가지 없는거야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물론 그런것보다 내게는 개그로 써먹을수 있는 소스를 만드는게 더 중요했다.







결국 제시카와 팀을 짤수 있었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명수씨, 여기는 냉면을 먹듯이 손을 이렇게 올리고, 쓰읍~하아 쓰읍~하아"


나이 40에 이렇게 빠른곡에 춤까지 춰야한다니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다.




"아이고, 좀 쉬었다 합시다..아이고"


내가 힘들어 퍼질러 있을때면 항상 느닷없이 제시카가 찾아왔다.




"왜 연습안하시고 누워계시는거에요! 이렇게해서 1등할 수 있겠어요?! 빨리 일어나세요!"


그렇게 옆에 와서 쫑알쫑알 거리면 다시 일어나서 연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 소녀는 나에게 자양강장제 같은 역할을 해줬는지도 모른다.





"시카야, 걱정하지마라. 내가 꼭 일등시켜줄게. 오빠만 믿어"


어쩌다 이렇게 장난스럽게 말을 걸면 소녀는 차갑게 대답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어요"


애늙은이 같은 말에 약간 어리둥절 했지만, 사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회 당일.




"아이고, 이것도 대회라고 떨리긴 떨린다 야..."


따뜻한 위로를 기대하고 건넨 말은 아니었다.






"너무 긴장하지마요... 수상이 중요한가요? 이렇게 좋은일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게 중요한거요!"

"자, 힘내요.. 화이팅!"


그녀는 나를 위로해줬다.

나는 순간 깨달았다. 



이 아이는 나와 같다.

상처받는것이 두려워 먼저 가시를 세운다.

하지만 가시속의 그녀는 너무나도 여리고 너무나도 착한 소녀였던 것이다.



나는 그 소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랑?

아니다. 

사랑이라기 보단 굳이 따지자면 부모가 자식에게 느끼는 감정에 가까웠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이고, 시카야 미안하다. 나 때문에 바쁜사람들 모셔놓고.. 애휴"


"괜찮아요 ^^"


"다들 끝났는데, 회식하러 가자! 갈비 어때?!"


"갈비?! 아 맞다. 나 내일 패떳 촬영있어서 먼저 갈게"


"재..재석아!"





"저도 내일 스케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그래.. 나중에 보자..!"


그 뒤로 한동안 제시카와는 연락할 수 없었다.







며칠 뒤 이수만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제시카와 듀엣을 해보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안합니다. 대회때도 저 때문에 시카양을 비롯한 여러분들 고생시켰고, 또 불우이웃을 돕는 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일을 상업적인일로 매듭짓고 싶진 않네요"





단칼에 거절했지만 제시카와 이대로 연락이 끊어지기는 아쉬웠다.


만날 구실이 필요했다. 


제시카에게 친한 개그맨 후배를 소개시켜주기로 마음먹었다.


제시카에게 먼저 문자를 보내 약속을 잡고 후배에게도 연락을 했다.


괜한 오해 생기는게 싫어서 여기저기 소문도 내고 다녔다.



"이번에 후배 G군하고 제시카하고 만나보게 해주려고.. "

"G군?"

"어, G가 그렇게 제시카를 만나고 싶다고 난리야. 아주 곤란해 미칠지경이다"

"G군 걔 소문이 안좋던데.. 남의 차 막 훔쳐타고 다닌다던데?"



결국 G군은 약속 당일날 아침 벤츠를 훔쳐타다가 걸려 조사를 받으러 갔다.





나는 안절부절해 있었다.


G군이 잡힌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나 혼자 만나러 가야 되나? 그러다 괜한 오해사면 어떻게 하지? 나야 그렇다치고 제시카는? 설마 내 나이에 스캔들이 날까?'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결국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레스토랑에서 만난 제시카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무슨 안좋은일 있나? 아니면 나를 만난게 싫은거야?'



잠시뒤 그녀는 화장실에 다녀왔고,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보였다.


제시카는 요리를 얼마 먹지도 않못하고, 스케쥴 때문에 금방 나가 버렸다.





'지켜주고 싶다'


'만나고 싶다'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나의 이런 복합적인 감정의 폭풍은 제시카 얼굴의 눈물자국을 봤기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내 감정을 내가 주체할수 없었다.




"여보세요, 사장님? 저, 하겠습니다. 듀엣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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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미 2009. 8. 14. 02:52

"냉면이 이렇게 까지 대박칠줄 난 몰랐거든. 허허"

재떨이에 담배를 털며 그가 말한다. 안경위로 올려다보는 날카로운 눈매는 마치 내 모든것을 꿰뚫고 있다고 말하는듯 하다.


"냉면으로 시카 너의 그 차가운 이미지도 분명히 많이 순화됐을꺼야. 분명히!"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건데요?"

제시카는 그의 기에 눌리기 싫어서 일부러 강하게 맞부딪쳤다.



"그러니까 말이야.. 시카야 너 솔로활동 하고 싶은 마음없어? 태연이도 솔로 활동했고, 윤아도 연기활동 꾸준히 하고 있고..."


"네?"


"아니, 뭐 말이 솔로활동이지. 박명수랑 같이하면 듀엣이지."


"...."


"한번 잘생각해봐. 명수한테는 이미 며칠전에 얘기해뒀어."


"뭐라고 하던가요..."
제시카가 나지막하게 얘기했다.



"응?"


"명수오빠 말이에요. 뭐라고 하던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명수야 당연히 좋다고 하지."


제시카는 자신이 그의 어떤 대답을 듣고 싶었던것일지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어떤 대답이라도 자신의 마음은 편할 수 없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싫어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정말로 다행이라고...  가슴 깊숙히 피어오르는 생각을 묻고 또 묻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는 제시카의 등뒤에서 이수만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그리고 그 소문 신경쓰지마. 내가 언플 좀 하지. 뭐 둘의 나이차라면 따로 손쓸일도 없을것 같지만 말야. 큭큭"

이수만 사장의 그 말은 제시카와 박명수 사이의 현실의 벽을 적나라하게 꼬집어놓아서 제시카의 마음을 더욱 후벼팠다.









다음날 소녀시대 숙소.



"시카야~ 뭐해? 헤헤헤"
침대에 풀이 죽어 누워있는 제시카에게 티파니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시카야~ 그런 헛소문 신경쓰지마~ 누가 너같이 예쁜애랑 박명수같은 아저씨랑 무슨일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겠냐~"


"..."


"시카야~아~아~"






우우웅~




"어, 전화왔네? 박명수 아저씨다! 내가 받아서 혼내줄까?!"


제시카는 말없이 휴대폰을 빼앗았다.



"후우..."

그리곤 차분히 한번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그래.. 시카야, 오빠야. 잘지냈지?"

오늘따라 그의 목소리가 더 자상하게 들린다.



"다른게 아니라, 사장님한테 얘기는 들었지? 생각해보겠다고 했다며..? 야, 잘 부탁한다. 내가 저번에 레스토랑 가서 맛있는거 사줬잖아, 허허... 우리 한번 해보자!"






제시카는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때문에..."




"응..?"







"그것 때문에 저를 레스토랑으로 부르신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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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미 2009. 8. 14. 02:51

"야!야! 어 어제 그얘기 들었어? 소녀시대 제시카랑 박명수랑 밤에 레스토랑에서 만났데!!"

"진짜? 둘이 냉면 같이 부르더니 그렇고 그런사이 된거 아니야?"

"야 내가 태연이한테 물어볼게 병신들아. 내가 물어보면 한방에 끝나. 라디오도 같이함"


sm 슈퍼주니어 연습실. 지난밤 제시카와 박명수가 만난 소문은 이곳으로 까지 번져왔다.


"어, 태연이 왜 전화 안받지..?"

"형 또 어장관리 당하는거 아니에요?"

"뭐 이 돼지새ㄲ.."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 안녕하세요? 오빠들"

제시카였다.

제시카는 소문이 도는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평소와 다를게 없었다.



"야..니가 물어봐"

"형이 물어봐요"

슈퍼쥬니어 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와보라고 씨빨!"

인파 사이에서 감탄사를 내뱉으며 동해가 나섰다.


"시카야. 너 박명수랑 만났다는게 사실이야 씨빨?"

"네?"
"아 그거 명수오빠가 냉면 대박나서 고맙다고 명수오빠 가족분들이랑 같이 식사한거에요. ^^ 벌써 그런 소문이 도는구나.. 곤란한데;;"


"아..역시 그런거지 시카야? 씨빨. 그럴줄 알았다 씨빨."


별일 아니라는듯 얘기하는 시카를 보고 안도해서 감탄사를 내뱉는 동해. 

하지만 그런 시카의 당당한 모습에 어딘지 모를 쓸쓸함이 감춰져 있다는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어이, 제시카! 이수만 사장님이 부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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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미 2009. 8. 14. 02:49

아저씨는 날 기억 못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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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다섯개의 선풍기보다도, 최신식 에어컨보다도 소녀의 곱고 하얀 피부를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소녀는 바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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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6일 일요일. 오후 10시


모든 사람들이 꿀맛 같았던 휴일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잠자리를 청하고 있을 시간에

제시카는 한 번화가의 고급 레스토랑에 앉아 있다.

연예인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수수한 옷차림에 모자를 푹 눌러 쓴 차림새였지만 멀리서 봐도 흐르는 귀티는 감출수가 없다.

제시카는 남자종업원들이 수근거리는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어젯밤의 문자를 몇번이고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시카야, 혹시 내일 시간되면 레스토랑에서 밥 같이 먹을래?]


"킥..킥ㅋ"

몇번이고 본 문자지만, 다시 봐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어젯밤은 제시카에겐 마치 꿈같은 날이었다.

일주일만에 그에게서 문자를 받은데다가, 방송이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의 첫 맞남 약속까지 잡았기 때문이다.

두근두근 설레여 밤잠까지 설쳤던 제시카지만, 자신이 왜 그렇게 기뻐하는지에 대해선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저기, 손님 무엇을 시키겠습니까?"

"아, 저기 일행이 곧 올거에요..!"


문자를 보는데 몰입해서 종업원이 다가오는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제시카는, 자신의 신분이 들킬까봐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답했다.



순간 제시카의 시야에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왔다.

"어이 명시카! 제시카!"


소녀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자신이 연예인 신분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여기에요! 오빠!"


그 외침에 이 가녀리고 아릿다운 소녀가 아이돌 스타라는것을 들키는것은 시간문제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제시카의 환하게 웃던 표정은 점차 굳어져갔다.



"아이고, 여기까지 오는데 차가 막혀서 말이야.. 그 동안 잘 지냈지?"


"아참. 이쪽은 내 아내야. 그리고 이쪽은 내 사랑하는 민서! 봐봐 귀엽지?!"




이미 제시카의 머릿속은 백지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그의 문자에서 "단둘이" 만난다는 내용은 없었다. 

아니, 이런 컴컴한 밤에 고급레스토랑에서 남녀가 단둘이 만난다는 생각을 하는것 자체가 이상한것이었다.

그는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다.


"저,,저기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도망치듯 빠져나와 화장실로 간 그녀는 자신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자신이 그를 사랑한다는것도 깨닫게 되었다.
by 치미 2009. 8. 14. 02:46

2009년 7월 25일 토요일, 소녀시대의 숙소


저녁준비를 하는 소리에 밖은 시끄럽다.

뭐가 그리 좋은지 다른 멤버들은 왁자지껄 즐겁게 떠들고 있다.


숙소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한체 어두컴컴한 방안에 혼자 이불을 뒤집어 쓰고있는 한 소녀.

금발에 이국적인 외모, 누가 봐도 귀공녀 스타일인 그녀는 9명의 소녀들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소녀였다.

그녀는 무엇인가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시카야, 뭐해?"

누군가 방안에 몰래 들어와 이불을 확 들추며 말한다.

어두운 방안이지만 살짝 열린 문틈사이로 비추는 빛에 색기 넘치는 몸매가 드러난다.

"어, 유리야.."

12명의 소녀중 가장 색기가 넘치는 유리는, 데뷔전부터 소녀시대 멤버중 유독 제시카에게 들이대곤 했다.


"DMB보고 있었어^^?"

제시카가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물건은 어느세 유리의 손에 들려 있었다.


"무한도전이네~ 명수오빠 진짜 웃긴다 ㅋㅋ 얼굴봐 ㅋㅋ 정말 하늘이 주신 개그맨이야 ㅋㅋ"


고양이 같은 유리의 웃음. 제시카는 왠지 자신을 놀리는것 같은 기분이 들어 뭔가 불편하다.

"됐어, 이리줘"

핸드폰을 다시 빼았고는 태연한척 거실로 향하는 제시카.


"왜그래! 명수오빠랑 같이 냉면 불렀다고 그새 정든거야?! 차가워 너무나~ 속이 시려~ 너무나 이빨이 너무 시려! 냉면!냉면!냉면!"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유리의 노래에 제시카는 얼굴이 빨개진다.



거실에선 저녁준비를 하는 다른 멤버와 달리 혼자 티비를 보고 효연이가 보인다. 채널은 SBS. 스타킹을 보고 있다.

"무한도전을 틀라고 바보야..." 작게 중얼거리는 제시카.

자신은 TV를 보고 있지 않지만 강호동의 오버리엑션이 점점 귀에 거슬린다.


"저기, 다른거 보ㅈ.." 



우우웅~



그 순간 익숙한 진동음과 동시에, 휴대폰 액정에 문자메세지가 떴다.



[당연히 무한도전 보고 있겠지? -악마-]



"어이 제시카, 뭐라고???"

"어..어? 아무것도 아니야"

휴대폰을 들고 황급히 화장실로 들어가는 제시카.

얼마만의 문자일까, 지난주 무도에서 듀엣가요제가 방송된후 꼬박 일주일 만의 문자다.


"아...뭐라고 답장을 하지..? 뭐라고 해야 좋을까 힝 ㅠㅠ"


5분동안 변기에 앉아 문자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소녀의 모습은 애처로워 보이기 까지 했다.


[당연히 재밌게 보고 있어요! 다른 멤버들도 오빠 너무 웃기다고 하던걸요 ^^]


확인버튼 앞에서 까딱까딱 거리며 고민하고 있는 그녀의 희고 가녀린 손가락이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후..."


답장을 보내고 안도하던 제시카는 화장실 거울에 비추는 자신의 얼굴을 발견했다.

제시카는 웃고 있었다.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http://gallog.dcinside.com/ghrkdtls/2247365592
by 치미 2009. 8. 14. 02:44
대망의 마지막날이 밝았습니다. 아침메뉴로 선택된 라면4개는 물조절에 실패하며 망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습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오네요? 비가 확 오는것도 아니고 가랑비 수준으로 살살 오더군요. 본래 가랑비 수준의 비는 맞고다니는 본인은 우비따위 입지않고 그냥 달렸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대비해서 가방은 비닐로 감싸고 출발!

이날의 첫 목적지는 A가 이전에 가족들과 제주도여행을 갔을때 갔다던 김녕부근의 한 맛집이었습니다. 그 곳의 전복죽이 참 맛있다면서 그곳엔 꼭 가야한다고 저희를 설득했죠. 저야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만 해물을 잘 못 먹는 B는 약간 난색. 아무튼 출발했습니다.


금방 김녕에 도착하고 맛집을 찾으러 골목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가게 비슷한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당황한 저희들은 A를 필두로하여 여기저기 찾으러 다녔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A는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그 때 먹은 식당의 위치를 여쭤보고 다시 출발. 그런데 저희는 A의 지나치게 맹렬한 대쉬에 A를 놓치고 길을 잃어버립니다. 이후 가까스로 연락이 닿아서 간신히 간신히 가게앞에서 합류. 저와 B는 친구를 내팽겨치고 가게를 향한 A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표했죠.

위의 지도에 찍힌 점 중 왼쪽에서 두번째에 찍힌 점 부근이 가게가 있던곳입니다. 최단거리는 1132 도로를 계속 타고 가다가 '동복리 입구'라는 곳으로 빠져나가는 길이었으나 저희는 우선 김녕 해수욕장을 거쳐 한 번, 길을 잃은 저와 B는 해안도로를 따라 또 한 번 헤메어 겨우 도착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헤메는 길이었던 해안도로를 달리며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식당인데 맛은?

전복죽

소라회


정말 맛있었습니다!!!!!!!!!!

해물을 잘 못 먹는 B도 만족을 표할정도로 훌륭했습니다. 둘째날에 갔던 횟집이 푸짐하다는 점에서 저희에게 좋은 점수를 얻었다면 여기는 말 그대로 좋은 맛으로 저희에게 좋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이만하면 고생(그닥 고생도 아니지만)해서 온 보람이 있지요. 가격은 전복죽 1인당 만원, 소라회 한접시 만원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계속 달려 도착한 곳은...


생뚱맞게도 삼양해수욕장입니다.

맨 앞에서 저희를 이끌던 A의 주장대로 온 곳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뭔가 보긴 봐야지.'란 말엔 동의하지만 해수욕장은 좀 아니잖아? 수영할것도 아니고, 여기에 도착 할 때 즈음엔 비가 그쳤지만 이전가지 계속 비가 내려서 사람도 별로 없을테고(실제로 별로 없었고)... 뭐, 그래도 검은 모래라는 점은 나름 독특한 요소여서 살짝 보고, 살짝 쉬고 왔습니다.

오히려 저는 지도에 그 근처에 '별도해벽'이라는 관광포인트가 있으니 거기에 가자고 하였죠. A와 B도 동의하고 가게됩니다. 그런데 그 곳에 가는 길이 없어요. 대체 그걸 어떻게 보라는 건지... 덕분에 약간 길을 헤메게 됩니다.

이렇게요... 세부적인 길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들어갔다가 길이 막혀서 약간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고지가 눈앞! 달리고 달리고 달렸습니다.


달리다가 보면 있는 한 길입니다. '제주하이킹'에서 제공한 지도에 따르면 이 구간은 사고위험지역입니다. 실제로 엄청난 경사가 져있어서 사고가 나기 좋아보였습니다. 다행히도 저희가 이곳을 지날때엔 차가 신호에 걸려서 별로 없었기에 속도를 만끽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용두암에 살짝 들러준 뒤에 골!

마지막날 이동거리 : 약 42km


첫날 이동거리 : 약 32km
둘째날 이동거리 : 약 60km
셋째날 이동거리 : 약 59km
마지막날 이동거리 : 약 42km

총 합쳐서 약 193km, 좀 더 부풀려서 약 195km의 대장정을 끝내고 다시 출발지에 도착합니다.

사진과 이름은 적절히 모자이크!


다 돌면 자랑하라고 이렇게 완주증도 만들어 줍니다. 참고로 완주증에 적힌 '220km'는 가장 일반적이고 무난한 경우에 돌게되는 거리라고 하네요.

이렇게 자전거 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3일 밤과 그 다음날인 4일엔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는데, 5일에 갑자기 피로가 밀려와서 거의 12시간을 잠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다리에 느껴지는 통증 으어......

그리고 귀찮다는 이유로 보호구, 모자, 토시, 선크림을 모두 무시한 덕에 얼굴과 팔이 완전 새까매졌습니다. 가족이 기겁 할 정도로... 다행히도 화상은 안 입었지만... 한차례 돌고 나서 느낀 자전거 일주를 할때 꼭 해야 할 것들을 꼽자면,

1. 헬멧과 보호구를 꼭 찹시다. (아 내가 할 말은 아닌 것도 같고...... 부끄러워라...)
2. 긴팔을 입거나 토시를 입어서 팔이 타는걸 방지합시다. (화상입으면 개고생)
3. 편한복장을 챙겨옵시다. (난 대체 무슨깡으로 4일간 한 청바지만 입고 자전거를 탔던가...)
4. 얼굴이 타는걸 막기 위해 모자나 썬크림을 꼭 챙깁시다.

처음이었기에 불안하면서도 엉성하게, 하지만 열심히 정신없이 달려온 4일이었습니다. 다음에 또 가게된다면 이런저런 관광지도 가보며(특히 마라도...) 더 알차게 보내고싶어요!

p.s. 이 글을 쓰기위해 지도를 구하고자 우선 다음지도로 접속. 그런데 다음지도의 거리재기 프로그램은 지도의 배율을 조정하거나 약간 이동하면 지정해놨던 길을 벗어나버리는 현상 발생. 빡쳐서 네이버지도로 이동. 여긴 매우 잘되고 거리재기 하나만큼은 다음보다 우수했으나, 조금만 하다보면 파탈에러로 파폭이 강제종료. 근데 익스로 하니가 잘만 되더군요. 아 더러운 대한민국 인터넷 환경.
by 치미 2009. 8. 10. 05:30
셋째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하지만 둘째날 그 험한길을 고생하며 달려온 운동부족 3인방은 너나할것없이 뻗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날은 훨씬 늦은 11시반이 되서나 출발 할 수 있었네요. 더 일찍 나오긴 했지만 아침식사와 모닝똥(...)등의 이유로 사실상 출발시간이 이때였습니다.

셋째날엔 어느정도 조바심이 난 상태였습니다. 둘째날 그 험한 길을 몸소 체험한데다가 B의 저질체력을 본 저희들은 이대로 가다간 다 못 돌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길을 재촉하게 됩니다. 그래서 숙소 코앞에 있던 천지연폭포와 정방폭포도 보지 않고 바로 출발합니다.(뭐, 출발시간이 늦기도 했고...)


중간에 나온 이런저런 박물관들은 전부 개무시하고 달려서 표선에 도착.

시간이 AM/PM이 뒤집혀 나오긴 했지만 정말 빠른 속도로 표선에 도착했습니다. 길도 둘째날에 비하면 평탄한 수준이었고, 무엇보다도 B의 자전거 실력이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B는 속도를 빠르게 낼 실력은 못 되었기때문에 그 대신 쉬지않고 달려야했죠. 저와 A는 박자를 맞추기위해 잠깐잠깐 쉬었구요. 그래서 이렇게 사진도 찍는거 아니겠습니까 하핫.

제 경우에도 큰 발전(?)이 있었습니다. 전날까지 쑤시던 몸 곳곳이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서 자전거를 타는데 '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고 특히 내리막길을 이용한 오르막길 정벅법을 나름대로 익히면서 더 쉽게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방법이 좋은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1/2일차때 보다는 훨씬 편한 방법으로 갈 수 있게 되었죠.

아, 그런데 '메오름'쪽 길은 정말 경사가 쩝니다. 단일 경사론 본좌포스에요.


표선해수욕장까지 점심을 먹으러 내려갔습니다. 점심을 먹은 식당은 요리는... 사실 별로였지만 후식으로 제공된 식혜가 시원한게 좋더군요.


말이 방목되어있는게 신기해서 찍었습니다. 표선해수욕장 근처에선 모래사장에서 경마대회도 열더라고요. 참 신기했습니다.


달리고 달려 성산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달리기만 했습니다. 아침에 좀 더 일찍 출발했으면 성산일출봉정도는 가볼수있었을테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 눈물을 머금고 멀리서 사진 한장만 찍은채 통과했습니다.

그대로 달리면서 세화에서 쉬느냐 김녕에서 쉬느냐로 또 갈렸습니다. 시간은 늦었으나 이 날 달렸던 길은 정말 평탄해서 김녕까지도 무난하게 갈 수 있을거라 예상됬기에 이런 말이 나온것이지요. A는 오늘 힘들더라도 좀 더 가서 김녕에서 쉬자고 했으나 저와 B가 그냥 가까운 세화에 일찍 들어가서 일찍부터 쉬자고 하여 세화에서 쉬었습니다. 가는길에 해녀박물관이 있었지만 역시나 무시하고 지나갑니다.

이 날은 '현대민박'이라는 곳에서 잤는데, 시설이 가장 좋았습니다. 2층을 통나무집 형식으로 꾸몄는데 정말 분위기 있고 좋더라고요. 다만 화장실이 너무 좁고, 저희가 묵은 방에선 변기가 그다지 좋지않아 대변을 처리하는데 에로사항이 있었으며, 주방은 공용이었다는 점이 단점이었습니다. 그외엔 굿, 굿! 3인 3만5천원이었습니다. 1층에 좀 안 좋은방은 2만5천원에 빌릴 수 있더군요.

셋째날 이동거리 : 약 59km


by 치미 2009. 8. 10. 04:52
둘째날이 밝았습니다. 평소 안 하던 운동을 많이 하다보니 온 몸이 쑤시더군요. 미칠듯한 통증과 함께 약 10시반경에 출발했습니다.

둘째날의 목표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바로 마라도! 무한도전 yes or no특집에서 마라도 자장면이 나왔을때부터 정말 먹고싶었거든요. 사실 이전에 갔던 여행에서도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배타고 마라도에 가려다가 당시 장마철이라 불안한 날씨 + 역시 너무 오래걸린다란 점 때문에 포기를 해야했습니다. 그래서 전 이번에야 말로 꼭 가고 말겠다는 의지에 불탔죠.

앞서 언급을 잊었습니다만, 하이킹업체에서는 주요 관광지의 할인쿠폰을 팔더군요. 거기서 마라도로 가는 배편을 샀는데, 시간대는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전화를 했죠. 했더니 왠 남자가 받더니 예약은 안 되며, 주말이니 서둘러서 와야 표를 살 수 있을거라고 하더군요. 저희는 대략 12시즈음에 모슬포항에 도착할것이라 예상하고 있었고, 마라도로 가는 배는 ...12시-2시-3시...에 있었으므로 충분할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출발. 협재해수욕장에서 모슬포항까지의 길은 무난한 시골길이었습니다. 꽤 힘을 들여야 할 언덕이 두번있긴 했지만 대체로 무난한 코스였죠. 하지만 역시 B가 문제였습니다. 자전거도 가장 못 타면서 체력도 가장 부족했고, '몸이 부서지더라도 가고야 말겠다'는 식의 근성도 가장 부족해서 항상 뒤쳐져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무난히 갈 수 있었습니다.


모슬포항 근처의 지도입니다. 1132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표시판은 좀 더 앞으로 나아가서 꺾어야 모슬포항에 갈 수 있다고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운이 좋게도 쉬려고 들어간 한 슈퍼의 주인아주머니의 조언덕에 저런 지름길아닌 지름길을 찾아 갈 수 있었지요.


그렇게 해서 도착한 모슬포항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무려 2시표 매진, 3시표도 매진!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전 정말 이거 하나만 바라보며 달렸는데! 12시 약간 넘어서 도착했는데 3시표까지 매진 되었다는 사실에 정말 울것같았습니다. 게다가 3시표는 표를 사려고 줄선 눈앞에서 매진되었다는 알림말이 뜨더군요. 혹시나하고 줄을 서봤는데 제 차례때 매표소 점원분이 전화로 예약을 받더군요. 정말 그 순간 아침에 예약 안 된다고 드립치던 그 남자분부터 시작해서 여정이 늦어진 원인인 B에게까지 화가 나더군요. 그래도 안 되는걸 어쩌겠습니까. 화를 삭히면서 근처 횟집중 한 곳에 들어가서 점심만 먹고 나왔습니다.

근데 점심이 정말 쩔더군요. 7만원짜리 모듬회 하나 시켰더니 회는 기본이고 각종 반찬에 생선머리에, 반찬이긴 했지만 생선까스랑 돈까스도 나왔고, 매운탕에다가 결정타로 팥빙수까지 나오더군요. 그 푸짐한 양에 저희들은 정말 행복한 비명을 질렀습니다. 마라도행이 좌절되었다는 사실에 화가 많이 났었는데 확 풀리더라구요.

산방산을 배경으로 내가 타고다니던 자전거와 함께...


점심을 배불리 먹고 다시 길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길이 참 멋지더군요.


대충 이런느낌입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쉬지않고 계속 나옵니다. 진짜 죽는줄 알았습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가며 나오긴 했지만 대체로 올라가는 형태라서 더더욱 힘들었습니다. 이쯤되니 B는 아예 걸어다니더군요. 일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안 좋은 행동이었지만 길이 길이니만큼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실 남에게 머라고 하기전에 제가 힘들어서 뭐라 할 힘이 없었어요. 정말 모슬포항이 있는 대정에서 천지연폭포가 있는 서귀포시 사이의 길이 제주도 일주 최대의 고비이자 최악의 길이라고 단언 할 수 있습니다.

뭐, 그래도 가다보니 한번 시원하게 내려가게는 해주더라구요.


중문관광단지 지도입니다. 이 부근부터 저 여미지 식물원 옆에 그어진 붉은 선으로 된 길까지는 시원한, 너무 시원해서 노브레이크면 자동차와도 맞짱뜰수있는 정도의 내리막길이 대체로 이어집니다.(중간에 한번 오르막이 살짝 있긴 합니다.) 그런데 그 내리막이 너무 급경사라 솔직히 위험합니다. 차가 적은것도 아니라 더더욱이요. 참고로 여기선 A가 과속으로 식겁했습니다. 안전운전합시다;;


중문관광단지를 조금 더 확대해보았습니다. 보면 모슬포항때처럼 들어갔다 나온 길이 하나 있지요? 네, 바로 주상절리입니다. 마라도행이 좌절되고나서 '그래도 명색이 여행인데 뭐 하나 보긴 봐야 할 것 아니냐?'란 생각에 모두 동의하여 주상절리를 보기로 했습니다.


가는길 중간에 있는 테디베어 박물관입니다. 사실 전 개인적으로 여기에 정말 가보고 싶었습니다. 박물관은 따분해서 질색이지만 이건 왠지 재밌어보였거든요. 그런데 B가 정말 질색을 하더군요. 이유를 물어도 대답도 안 하고... 자전거라도 잘 타면 말이라도 안 하지 얄미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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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절리 사진 몇장입니다. 뭐, 대단한건 아닙니다만...

여기 주상절리에서 주상절리도 보며 짧은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이젠 숙소로 출발. 업체에서 추천해준 숙소로는 찜질방과 모텔이 있었는데, 저는 '찜질방에 가서 뜨거운 탕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자.'고 했고, A는 '찜질방에선 잠을 편히 못 잔다. 피로를 풀기위해 모텔에서 숙면을 취하자.'고 주장했죠. B는 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모텔을 선택했습니다. 모텔이 찜질방보다 좀 더 가야 있었으므로, 그 다음날 일정에도 긍정적이었다는 측면도 있었지요.

그렇게 길을 계속 가는데 이전만큼 다이나믹하진 않지만 여전히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입니다(물론 오르막 위주). 이쯤되니 제 다리도 비명을 질러대서 오르막에서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저 갈라진 부분이 보이시나요? 저 부분이 또 '시원한 내리막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도로도 차들이 많이 다녀서 위험합니다. 결정적으로 갓길이 있긴하지만 갓길부분에 식물(나무나 줄기 등)이 많이 튀어나와있어서 실질적으로 자전거로 달릴만한 길은 매우 좁습니다. 저도 내리막이라고 신나게 달리다가 나뭇가지에 한번 맞아서 큰일날뻔했네요. 이곳도 꽤나 위험한 길이니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둘째날 이동거리 : 약 60km


둘째날에도 길고긴 여정을 마치고 숙소에 안ㅋ착ㅋ

그런데 애초 목표로 한 숙소인 성림장모텔엔 방이 없더군요. 그래서 주인장의 추천하에 딴 모텔로 이동. 그런데 거긴 정말 최악. 문도 제대로 안 열려, 방은 존나 좁아, 뜨거운물 나오는데 시간이 오래걸려, 분위기도 뭐같았고 결정적으로 바퀴벌레까지! 결국 빡친 저희들은 탈출하고 다른 숙소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 숙소는 정말 대 만족. 훨씬 넓고, 에어콘 좋고, 시설좋고. 음음. 옮겨야 했던 두개의 숙소명을 밝히지 않는건 숙소명이 생각나지 않아서 입니다. 저희가 만족하고 잔 숙소는 성림장모텔에서 오르막길을 올라가다보면 보이는 코사마트슈퍼 바로 옆에 있던 한 모텔이었으니 참고하세요. 그 모텔 역시 3인 3만원이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끝에 밤 11시반이 되서야 한숨돌리고 저녁으로 치킨두마리를 시켜 먹을 수 있게되었죠. 정말 힘들었던 만큼 정말 맛있었습니다.


by 치미 2009. 8. 10.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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