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태호야, 오늘 뭐한다고?"


"아니, 이 형은 왜 계속 물어봐? 오늘 듀엣 가요제한다고!"



듀엣가요제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때부터 내 생각은 하나였다.

요즘 인기있는 아이돌과 엮어서 한번 대박 내보자는 생각.



제시카를 처음 찾아가 부탁했을때 혼쾌히 승낙해줄것이라 생각했는데, 뜸을 들이는것을 보고 약간 기분이 상했다.

요즘 젊은애들 싸가지 없는거야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물론 그런것보다 내게는 개그로 써먹을수 있는 소스를 만드는게 더 중요했다.







결국 제시카와 팀을 짤수 있었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명수씨, 여기는 냉면을 먹듯이 손을 이렇게 올리고, 쓰읍~하아 쓰읍~하아"


나이 40에 이렇게 빠른곡에 춤까지 춰야한다니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다.




"아이고, 좀 쉬었다 합시다..아이고"


내가 힘들어 퍼질러 있을때면 항상 느닷없이 제시카가 찾아왔다.




"왜 연습안하시고 누워계시는거에요! 이렇게해서 1등할 수 있겠어요?! 빨리 일어나세요!"


그렇게 옆에 와서 쫑알쫑알 거리면 다시 일어나서 연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 소녀는 나에게 자양강장제 같은 역할을 해줬는지도 모른다.





"시카야, 걱정하지마라. 내가 꼭 일등시켜줄게. 오빠만 믿어"


어쩌다 이렇게 장난스럽게 말을 걸면 소녀는 차갑게 대답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어요"


애늙은이 같은 말에 약간 어리둥절 했지만, 사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회 당일.




"아이고, 이것도 대회라고 떨리긴 떨린다 야..."


따뜻한 위로를 기대하고 건넨 말은 아니었다.






"너무 긴장하지마요... 수상이 중요한가요? 이렇게 좋은일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게 중요한거요!"

"자, 힘내요.. 화이팅!"


그녀는 나를 위로해줬다.

나는 순간 깨달았다. 



이 아이는 나와 같다.

상처받는것이 두려워 먼저 가시를 세운다.

하지만 가시속의 그녀는 너무나도 여리고 너무나도 착한 소녀였던 것이다.



나는 그 소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랑?

아니다. 

사랑이라기 보단 굳이 따지자면 부모가 자식에게 느끼는 감정에 가까웠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이고, 시카야 미안하다. 나 때문에 바쁜사람들 모셔놓고.. 애휴"


"괜찮아요 ^^"


"다들 끝났는데, 회식하러 가자! 갈비 어때?!"


"갈비?! 아 맞다. 나 내일 패떳 촬영있어서 먼저 갈게"


"재..재석아!"





"저도 내일 스케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그래.. 나중에 보자..!"


그 뒤로 한동안 제시카와는 연락할 수 없었다.







며칠 뒤 이수만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제시카와 듀엣을 해보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안합니다. 대회때도 저 때문에 시카양을 비롯한 여러분들 고생시켰고, 또 불우이웃을 돕는 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일을 상업적인일로 매듭짓고 싶진 않네요"





단칼에 거절했지만 제시카와 이대로 연락이 끊어지기는 아쉬웠다.


만날 구실이 필요했다. 


제시카에게 친한 개그맨 후배를 소개시켜주기로 마음먹었다.


제시카에게 먼저 문자를 보내 약속을 잡고 후배에게도 연락을 했다.


괜한 오해 생기는게 싫어서 여기저기 소문도 내고 다녔다.



"이번에 후배 G군하고 제시카하고 만나보게 해주려고.. "

"G군?"

"어, G가 그렇게 제시카를 만나고 싶다고 난리야. 아주 곤란해 미칠지경이다"

"G군 걔 소문이 안좋던데.. 남의 차 막 훔쳐타고 다닌다던데?"



결국 G군은 약속 당일날 아침 벤츠를 훔쳐타다가 걸려 조사를 받으러 갔다.





나는 안절부절해 있었다.


G군이 잡힌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나 혼자 만나러 가야 되나? 그러다 괜한 오해사면 어떻게 하지? 나야 그렇다치고 제시카는? 설마 내 나이에 스캔들이 날까?'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결국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레스토랑에서 만난 제시카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무슨 안좋은일 있나? 아니면 나를 만난게 싫은거야?'



잠시뒤 그녀는 화장실에 다녀왔고,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보였다.


제시카는 요리를 얼마 먹지도 않못하고, 스케쥴 때문에 금방 나가 버렸다.





'지켜주고 싶다'


'만나고 싶다'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나의 이런 복합적인 감정의 폭풍은 제시카 얼굴의 눈물자국을 봤기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내 감정을 내가 주체할수 없었다.




"여보세요, 사장님? 저, 하겠습니다. 듀엣 하겠습니다."



http://gallog.dcinside.com/ghrkdtls/27421181677
by 치미 2009. 8. 14. 02:52